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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article search result : 1

오래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이자 삶의 방편으로 알고 살지만, 한때 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40명의 동기들과 해부용 칼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죽음을 앞둔 커다란 개들과 눈을 마주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본격적인 해부학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설레는 날이었지만, 그 개들에게는 인위적인 죽음이 선고되는 날이었지요. 우리는 주로 군견으로 충성을 다하고 퇴출된 셰퍼드를 해부용으로 기증받았습니다. 동기들 누구나 그 죽음 앞에서 안쓰러움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은 꺼내놓은 터였는데, 어느 여자 동기가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지요.

그 이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생각을 이어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메리 로치가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는 제가 좀 전에 말한 실험용 개처럼 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사체에 대한 책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글쓰기

죽음만큼 고결한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까닭도 그런 이유겠지요. 또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을 해보지요. <인체재활용>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 여전히 그것은 숙연한 주제입니다만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애도 혹은 시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인체를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가 절단 같은 것이 주는 느낌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하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한 정도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 (93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한 가지 배우고 싶은 바는 숙연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의 글쓰기가 음울한 구석으로 내몰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론 살아있는 자의 입장, 또 때론 죽어간 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는 톡톡 튑니다. ‘경쾌’라는 말이 풍기는 선입견을 제외한다면, 그의 글쓰기는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의학용으로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위에 인용한 부분을 같이 볼까요? 여기에서는 시신을 본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시신 기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조금 엿보입니다만, 무엇보다 저자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바는 죽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본 시신의 활용에 대해 전해주고, 또 죽은 자의 입장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 그의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라 부를 수 있겠지요.


사체 실험의 역사와 실제

한국에서도 의학 드라마가 종종 방영된 탓에 이제 ‘커대버’(cadaver)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본래 ‘시체’라는 뜻이고, 의학용어로는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커대버’라는 존재가 생겼을까요.

“연구용 시체는 지난 2000년간 자발적으로,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대담한 한 발짝을 뗐을 때도, 더 없이 기괴한 실험에 참여해왔다. 프랑스가 교수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다 만든 단두대를 처음 시험할 때도 시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실험실 사람들에게 최신 기법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p.7)

저자는 ‘최초’의 사체 실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긴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위에서 말하고 있는 단두대와 사체 실험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또 우주왕복선에 시신 토막을 싣고 갔다(?)는 일화 등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인체재활용>은 역사 속 실험과 오늘날 다양한 사체 실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매우 다양한 실험 현장들은 정말 낯설기까지 합니다.


죽음, 그 삶 너머의 삶

종교가 없는 저는 죽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듯 죽음조차도 삶의 또 다른 시간으로 인식할 수는 있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사체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그 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렇게 밝혀두고 있기도 하지요.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 (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게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p.343)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는 저자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독자의 입장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났지만, 그 웃음 뒤로 삶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죽음에 관한 독서의 끝에서 얻은 소득이 ‘삶에 대한 욕구’라면 아이러니한 것일까요?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죽음’에 대한 오래된 우리의 관심들은 여전히 삶에 주어지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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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5/13 21:36
우선, 트랙백 감사드려요. ^^
전 솔직히 끝까지 안 읽고 쓴 리뷰였는데요, 이 글을 읽으니 꼼꼼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wrote at 2010/05/14 22:47
책 정말 재미있던데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반갑습니다.
wrote at 2010/05/14 09:37
반가워요~^^ 오늘 첨 뵙는 블로거시네요.~~앞으로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
자주 놀러오겠습니당!
wrote at 2010/05/14 22:48
반갑습니다.
뤼야 
wrote at 2010/05/14 15:57
어떻게 제 블로그를 구독해주셨는지요 ㅜㅜ. 님과 같이 이렇게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전 보험에 관한 영업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데요. 그래도 블로그 상이지만 이렇게 님과 만난 것도 인연이겠지요~.. 저도 최근에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에세이로 97세임에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자신의 아버지와 중년이되어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여러가지 사실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님이 추천해주신 책 한번 꼭 사서 읽겠습니다. 저 역시 종교가 없기 때문인지. 사후에 어떤 세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죽음을 궁금해 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할지라도 오늘을 이렇게 살고 있지요!!!!! 글 잘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wrote at 2010/05/14 22:51
반갑습니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제목, 참 어떤 종교보다 진리에 가까운 말이군요. 저도 한 번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wrote at 2010/05/18 14:37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계시던 때가 있었군요.
의술 쪽과 관계가 없는 전 마지막으로 해부를 해본게 중학교 때 였습니다. (개구리를 준비해오라는데 두꺼비를 잡아갔었죠)
몇 년 전부터 장기기증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 이라는 생각으로 장기기증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난 뒤의 세계... 종교적으로는 믿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죽음이라는 것을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죽음 앞에서 더욱 나약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0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앞의 차와 부딪히기 전까지... "아! 부딪히겠구나" 라는 직감적인 느낌과 함께, 순간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가더군요.
정작 제 죽음을 앞에 둔다면 다시금 그런 느낌일지...
지금은 제 곁에 함께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하루 하루를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는게 다랍니다^^;;;
죽음은 죽음.. 나중은 나중...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 는 생각인데, 어찌보면 너무 어리석은 것일까요?

오늘도 오랫만에 방문해서 주제도 없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비가 오니 늘어지기 쉬운 하루인데... 마음 만큼은 상쾌한 오후가 되시기 바랍니다^^
wrote at 2010/05/19 19:07
저도 장기기증 마음은 먹었었는데 막상 기증 서약서를 쓰려니 망설여지더군요. 사람 마음이 그런가봅니다.
밋첼 님과 비슷한 경험 저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사실 ‘갑작스레’ 일어나지만 그 순간도 보이지요. 늘 죽음은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늘 타고난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wrote at 2010/05/20 15:15
예전에 스티프STIFF라는 동명의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혹시 같은 책인가요?
어느 여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해서 쓴 책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과 깊이 있는 취재 내용에 놀랍고 부러워했어요
저는 그때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보다, 육신의 가벼움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저작들이 좀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wrote at 2010/05/23 09:26
네 저 위에 책 표지에 STIFF라고 크게 씌여있지요?
뜨인돌 님 반갑습니다!
wrote at 2010/05/22 16:36
덕분에 저의 장바구니는 또 무거워지겠네요~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네요~
흠.... 정녕 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날은 없는 것인지;;; ㅠ.ㅠ
wrote at 2010/05/23 09:25
참좋다 님!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wrote at 2010/05/25 11:08
마지막, 책저자의 글 내용이 위트 있네요 ㅎ
죽은 이의 윙크를 받으며 좀더 자신감있게 책임감있게 숭고하게 칼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흠...
근데 시신 기증은 계속 생각 더 해야겠군요 (쿨럭~):;
wrote at 2010/05/28 15:26
저자가 글을 재치있게 잘 쓰더군요.
시신 기증은 저도 아직...^^
wrote at 2010/06/07 04:35
글감옥에서온편지 님!

흔히 생체 부품이라지요
의대에서
많은 시신들 가져다 실습을 하는
주검에 대한
작은 실체에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행복은 곁에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wrote at 2010/06/08 19:49
제가 못 들어본 용어입니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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