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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이자 삶의 방편으로 알고 살지만, 한때 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40명의 동기들과 해부용 칼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죽음을 앞둔 커다란 개들과 눈을 마주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본격적인 해부학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설레는 날이었지만, 그 개들에게는 인위적인 죽음이 선고되는 날이었지요. 우리는 주로 군견으로 충성을 다하고 퇴출된 셰퍼드를 해부용으로 기증받았습니다. 동기들 누구나 그 죽음 앞에서 안쓰러움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은 꺼내놓은 터였는데, 어느 여자 동기가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지요.

그 이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생각을 이어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메리 로치가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는 제가 좀 전에 말한 실험용 개처럼 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사체에 대한 책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글쓰기

죽음만큼 고결한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까닭도 그런 이유겠지요. 또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을 해보지요. <인체재활용>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 여전히 그것은 숙연한 주제입니다만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애도 혹은 시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인체를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가 절단 같은 것이 주는 느낌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하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한 정도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 (93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한 가지 배우고 싶은 바는 숙연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의 글쓰기가 음울한 구석으로 내몰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론 살아있는 자의 입장, 또 때론 죽어간 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는 톡톡 튑니다. ‘경쾌’라는 말이 풍기는 선입견을 제외한다면, 그의 글쓰기는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의학용으로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위에 인용한 부분을 같이 볼까요? 여기에서는 시신을 본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시신 기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조금 엿보입니다만, 무엇보다 저자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바는 죽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본 시신의 활용에 대해 전해주고, 또 죽은 자의 입장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 그의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라 부를 수 있겠지요.


사체 실험의 역사와 실제

한국에서도 의학 드라마가 종종 방영된 탓에 이제 ‘커대버’(cadaver)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본래 ‘시체’라는 뜻이고, 의학용어로는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커대버’라는 존재가 생겼을까요.

“연구용 시체는 지난 2000년간 자발적으로,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대담한 한 발짝을 뗐을 때도, 더 없이 기괴한 실험에 참여해왔다. 프랑스가 교수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다 만든 단두대를 처음 시험할 때도 시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실험실 사람들에게 최신 기법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p.7)

저자는 ‘최초’의 사체 실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긴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위에서 말하고 있는 단두대와 사체 실험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또 우주왕복선에 시신 토막을 싣고 갔다(?)는 일화 등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인체재활용>은 역사 속 실험과 오늘날 다양한 사체 실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매우 다양한 실험 현장들은 정말 낯설기까지 합니다.


죽음, 그 삶 너머의 삶

종교가 없는 저는 죽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듯 죽음조차도 삶의 또 다른 시간으로 인식할 수는 있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사체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그 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렇게 밝혀두고 있기도 하지요.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 (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게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p.343)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는 저자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독자의 입장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났지만, 그 웃음 뒤로 삶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죽음에 관한 독서의 끝에서 얻은 소득이 ‘삶에 대한 욕구’라면 아이러니한 것일까요?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죽음’에 대한 오래된 우리의 관심들은 여전히 삶에 주어지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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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10/05/13 21:36
우선, 트랙백 감사드려요. ^^
전 솔직히 끝까지 안 읽고 쓴 리뷰였는데요, 이 글을 읽으니 꼼꼼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wrote at 2010/05/14 22:47
책 정말 재미있던데요.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반갑습니다.
wrote at 2010/05/14 09:37
반가워요~^^ 오늘 첨 뵙는 블로거시네요.~~앞으로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
자주 놀러오겠습니당!
wrote at 2010/05/14 22:48
반갑습니다.
뤼야 
wrote at 2010/05/14 15:57
어떻게 제 블로그를 구독해주셨는지요 ㅜㅜ. 님과 같이 이렇게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전 보험에 관한 영업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데요. 그래도 블로그 상이지만 이렇게 님과 만난 것도 인연이겠지요~.. 저도 최근에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에세이로 97세임에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자신의 아버지와 중년이되어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여러가지 사실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님이 추천해주신 책 한번 꼭 사서 읽겠습니다. 저 역시 종교가 없기 때문인지. 사후에 어떤 세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죽음을 궁금해 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할지라도 오늘을 이렇게 살고 있지요!!!!! 글 잘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wrote at 2010/05/14 22:51
반갑습니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제목, 참 어떤 종교보다 진리에 가까운 말이군요. 저도 한 번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wrote at 2010/05/18 14:37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계시던 때가 있었군요.
의술 쪽과 관계가 없는 전 마지막으로 해부를 해본게 중학교 때 였습니다. (개구리를 준비해오라는데 두꺼비를 잡아갔었죠)
몇 년 전부터 장기기증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 이라는 생각으로 장기기증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난 뒤의 세계... 종교적으로는 믿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죽음이라는 것을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죽음 앞에서 더욱 나약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0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앞의 차와 부딪히기 전까지... "아! 부딪히겠구나" 라는 직감적인 느낌과 함께, 순간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가더군요.
정작 제 죽음을 앞에 둔다면 다시금 그런 느낌일지...
지금은 제 곁에 함께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하루 하루를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는게 다랍니다^^;;;
죽음은 죽음.. 나중은 나중...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 는 생각인데, 어찌보면 너무 어리석은 것일까요?

오늘도 오랫만에 방문해서 주제도 없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비가 오니 늘어지기 쉬운 하루인데... 마음 만큼은 상쾌한 오후가 되시기 바랍니다^^
wrote at 2010/05/19 19:07
저도 장기기증 마음은 먹었었는데 막상 기증 서약서를 쓰려니 망설여지더군요. 사람 마음이 그런가봅니다.
밋첼 님과 비슷한 경험 저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사실 ‘갑작스레’ 일어나지만 그 순간도 보이지요. 늘 죽음은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늘 타고난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wrote at 2010/05/20 15:15
예전에 스티프STIFF라는 동명의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혹시 같은 책인가요?
어느 여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해서 쓴 책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과 깊이 있는 취재 내용에 놀랍고 부러워했어요
저는 그때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보다, 육신의 가벼움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저작들이 좀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wrote at 2010/05/23 09:26
네 저 위에 책 표지에 STIFF라고 크게 씌여있지요?
뜨인돌 님 반갑습니다!
wrote at 2010/05/22 16:36
덕분에 저의 장바구니는 또 무거워지겠네요~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네요~
흠.... 정녕 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날은 없는 것인지;;; ㅠ.ㅠ
wrote at 2010/05/23 09:25
참좋다 님!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wrote at 2010/05/25 11:08
마지막, 책저자의 글 내용이 위트 있네요 ㅎ
죽은 이의 윙크를 받으며 좀더 자신감있게 책임감있게 숭고하게 칼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흠...
근데 시신 기증은 계속 생각 더 해야겠군요 (쿨럭~):;
wrote at 2010/05/28 15:26
저자가 글을 재치있게 잘 쓰더군요.
시신 기증은 저도 아직...^^
wrote at 2010/06/07 04:35
글감옥에서온편지 님!

흔히 생체 부품이라지요
의대에서
많은 시신들 가져다 실습을 하는
주검에 대한
작은 실체에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행복은 곁에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wrote at 2010/06/08 19:49
제가 못 들어본 용어입니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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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무거운 마음이 행간을 앞질러 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청탁받은 글을 쓸 때가 그렇고, 혹평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보다 훨씬 더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몸져누운 분들의 책을 펼 때입니다.

'몸져눕는다는 것'. 저야 이제 30대 중반에 막 이르렀으므로 미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지난해 어느 날,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응급실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봐야하는 신세가 되기 전까지요.

결국에는 꾀병으로 판정되었지만 응급실에 누워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하더군요. 무엇보다 몸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것이 몸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집착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몸져눕는 것이란, 세상으로부터 타자들로부터 그리고 긴 시간으로부터 외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법정(法頂) 스님의 책 몇 권을 펴든 까닭도 몸져누워있는 그 분의 외로움을 조금 달래볼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합니까. 제가 <오두막 편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도 전에 "법적 스님 입적"이라는 속보를 접해야만 했습니다. 법정 스님! 본래 죽음이 그렇다지만, 오두막에서 병고로, 그리고 죽음으로 끝내 외로운 길을 걸어가시는군요.


수행의 한 흔적으로서의 글쓰기

<오두막 편지>라고 하니, '오두막'이라는 단어에 먼저 시선이 갑니다. 그 단어를 반복하여 발음하다 보면 말이 참 예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전을 뒤적여보면 '작게 지어 사람이 겨우 거처할 만한 막'이라는 풀이가 나옵니다. 그렇게 법정 스님은 자신의 몸 하나 겨우 거둘 수 있는 움막에서 이 책을 쓰셨나 봅니다. 이 책에서 법정 스님은 명상의 전제 조건으로서 '홀로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눈과 귀에 방해물이 적은 고요하고 깨끗한 방에서, 가볍고 느슨한 옷으로, 방석을 깔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는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우선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귀를 기울인다. 무슨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를 지켜보라는 뜻이다. (p.85)

오늘날 '명상'은 고상한 여가쯤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만, 법정 스님은 명상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인식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전제 조건으로 '홀로 있음'을 강조하셨던 것이겠지요. "고요를 지켜보라"라는 저 구절이 저에게는 명상을 하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러니까 명상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홀로 있음, 그리고 수행의 한 조건으로서 홀로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저는 수행이나 불교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글쓰기가 수행의 한 방식이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인식은 불교에 관한 책을 조금 뒤적여본 것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며칠간 <오두막 편지>를 읽으며 그러한 제 생각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이 책에서  법정 스님이 "명상은 홀로 누리는 신비로운 정신세계이다"(p.86)라고 말씀하신 것 역시 그러한 수행의 방식에 대한 말씀이겠거니와, <오두막 편지>는 그러한 연장에서 자신을 오두막에 가두고 수행한 흔적의 하나로 읽힙니다.


사회비평 혹은 문명비평으로서의 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저야 이제 막 글쟁이를 자처하며 나선 셈이지만, 종종 글쓰기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행위인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특히 자조적인 글쓰기를 할 때면 그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지요.

이것은 제 글쓰기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흔히 잡문으로 불리기도 하는 수필이 본디 그러한 양식이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오두막 편지>는 수행의 한 흔적을 보여주면서도 그러한 자조적인 글쓰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에게 내리는 죽비 소리 같은, 때론 큰 호통 같은 면모를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간의 가슴을 잃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든지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가슴을 일게 되면 아무리 많이 차지하고 산다 할지라도 암흑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 각자가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마음껏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국민생활에 불편과 부당한 간섭과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활발한 촉매작용으로 삶의 결실을 알차게 이룰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도 달려 있다. (p.141)

집필 연도가 1997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위의 글을 꺼내놓고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당치 않을 것입니다. 또 법정 스님이 우리의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판명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오두막 편지>에는 수행의 한 흔적으로서의 글쓰기를 넘어 사회비평 혹은 문명비평으로서의 글쓰기가 엿보인다는 점은 밝혀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법정 스님의 이력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특이한 이력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 민주수호국민협의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이력이지요. 오늘 법정 스님의 입적에 그러한 이력이 문득 먼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위의 글을 다시 읽어보며, 특히 "여기에 우리의 미래도 달려 있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1960~70년대 스님의 이력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종종 죽비의 소리처럼 날카로운 법정 스님의 '사회비평으로서의 글쓰기', 혹은 '문명비평으로서의 글쓰기'를 그리워하겠지요.

며칠 간 <오두막 편지>를 가슴에 품고 읽는 동안, 그리고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하며 글쓰기의 양식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생멸 과정의 일부분으로 인식한다지만, 저와 같이 수행이나 불교에 미천한 이들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슬픈 일입니다.

작년과 올해 우리 사회는 유달리 많은 분들을 잃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큰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 떠나가신다는 것, 우리들이 존경했던 누군가가 떠나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오두막의 수행자처럼 외롭지만 죽비소리처럼 날카로운 법정 스님의 글들이 곁에 남아 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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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양 
wrote at 2010/03/11 17:49
어쩐지 씁쓸하네요.
한 번은 꼭 찾아뵙고 싶었던 분이였는데...
wrote at 2010/03/11 18:59
사회의 큰 어른들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합시다.
wrote at 2010/03/11 17:55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 ....
wrote at 2010/03/11 19:00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합시다.
wrote at 2010/03/11 18:22
큰 어른께서 또 한 분 가셧네요.
상실의 시대입니다.
모두들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그새 티스토리로 이사오셨네요.
적응하기 나름이겠지만 네이버, 다음 블로그를 거쳐 티스토리를 하고 잇는 저로서는 티스토리가 그중 낫지 싶습니다.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하여튼 따로 기재하지 않고 댓글 달수 있어서 저야 편하네요^^
wrote at 2010/03/11 22:50
진심으로 추모해야 할 일입니다.
어멍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왕래하시지요.

(+) 얼마 전, 제가 리뷰를 쓴 <식스 픽셀>을 읽고 블로그에 실명을 기재했습니다. 여전히 인터넷 글쓰기에 대한 편견들이 있지만 저는 실명으로 써나갈 작정입니다. 혹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식스 픽셀> 한 번 읽어보세요. 블로그 운영에 큰 도움이 됩니다.
wrote at 2010/03/11 19:38
무소유란 책을 통해 법정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분을 잃어버렸네요.
wrote at 2010/03/11 19:48
<무소유> 역시 좋은 책이지요. 故 김수환 추기경께서 극찬하셨지요. 함께 추모합시다.
wrote at 2010/03/11 21:16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극락왕생을 빌어 드리는 수 밖에요.
wrote at 2010/03/11 22:19
삶이 늘 이별이지요. 함께 극락왕생을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wrote at 2010/03/12 18:37
이 분이 가시면 대체 어떤 이들이 우리를 깨우쳐 줄런지요...
wrote at 2010/03/12 19:01
아직 장례 절차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저 추모만 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wrote at 2010/03/14 00:08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서도, 특정 신앙을 떠나서 각 계의 종교인들이 추모의 서신을 보내는 모습은
진심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남몰래 불우한 학생들을 도와오신 스님의 순수한 마음은 타 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각박하게 하는 우리 모두에게 울리는 바가 크지요.
wrote at 2010/03/14 00:24
sumthin 님 안녕하세요?
모든 게 고인이 베푸신 덕이겠지요. 말하기는 쉬우나 행동하기는 어려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배워야 할 게 많은 분이지요.
wrote at 2010/03/16 11:39
인간적으로는 안타까우나..
이제야 인간의 육체를 벗어내시고 또 다른 수행에 들어가신게 아닐른지요.
큰 존재 한분을 잃었으나, 가르침은 남아있으니~ 그저 극락왕생을 빌어드릴 뿐입니다.
wrote at 2010/03/16 21:57
종교를 떠나 인간의 삶이 이토록 유한한 까닭이겠지요!
늘 마음의 스승을 잃을 때면 마음이 먼저 아파옵니다.
wrote at 2010/03/17 00:27
정말 딱 알맞는 아름다운 비유네여, 죽비소리. 그리운 소리네여
wrote at 2010/03/17 00:45
고맙습니다. 제목을 붙여준 분들이 따로 있어서, 칭찬은 제가 받아야 할 몫이 아닌듯 합니다. (+) 캐나다에 사시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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