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27 categorized under 오마이북! 행복한 책읽기 & written by 글감옥
오래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이자 삶의 방편으로 알고 살지만, 한때 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40명의 동기들과 해부용 칼을 손에서 잠시 내려놓고 죽음을 앞둔 커다란 개들과 눈을 마주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본격적인 해부학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설레는 날이었지만, 그 개들에게는 인위적인 죽음이 선고되는 날이었지요. 우리는 주로 군견으로 충성을 다하고 퇴출된 셰퍼드를 해부용으로 기증받았습니다. 동기들 누구나 그 죽음 앞에서 안쓰러움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은 꺼내놓은 터였는데, 어느 여자 동기가 엉엉 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지요.
그 이후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 생각을 이어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요. 우리 모두가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메리 로치가 쓰고, 권루시안이 옮긴 <인체재활용: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는 제가 좀 전에 말한 실험용 개처럼 의학 실험을 위해 사용되는 사체에 대한 책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글쓰기
죽음만큼 고결한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까닭도 그런 이유겠지요. 또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을 해보지요. <인체재활용>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 여전히 그것은 숙연한 주제입니다만 이 책의 저자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애도 혹은 시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을 때 인체를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체를 과학에 기증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해부라든가 절단 같은 것이 주는 느낌 때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부패하는 것이나, 관을 개방하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턱과 콧구멍을 꿰매 입을 만드는 것에 비해 끔찍한 정도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 (93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한 가지 배우고 싶은 바는 숙연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의 글쓰기가 음울한 구석으로 내몰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때론 살아있는 자의 입장, 또 때론 죽어간 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저자의 문체는 톡톡 튑니다. ‘경쾌’라는 말이 풍기는 선입견을 제외한다면, 그의 글쓰기는 경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의학용으로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위에 인용한 부분을 같이 볼까요? 여기에서는 시신을 본 느낌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시신 기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조금 엿보입니다만, 무엇보다 저자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바는 죽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본 시신의 활용에 대해 전해주고, 또 죽은 자의 입장을 자주 취하기 때문에 그의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라 부를 수 있겠지요.
사체 실험의 역사와 실제
한국에서도 의학 드라마가 종종 방영된 탓에 이제 ‘커대버’(cadaver)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본래 ‘시체’라는 뜻이고, 의학용어로는 의학 교육과 연구에 쓰이는 시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커대버’라는 존재가 생겼을까요.
“연구용 시체는 지난 2000년간 자발적으로,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대담한 한 발짝을 뗐을 때도, 더 없이 기괴한 실험에 참여해왔다. 프랑스가 교수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다 만든 단두대를 처음 시험할 때도 시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실험실 사람들에게 최신 기법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p.7)
저자는 ‘최초’의 사체 실험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긴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위에서 말하고 있는 단두대와 사체 실험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또 우주왕복선에 시신 토막을 싣고 갔다(?)는 일화 등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인체재활용>은 역사 속 실험과 오늘날 다양한 사체 실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매우 다양한 실험 현장들은 정말 낯설기까지 합니다.
죽음, 그 삶 너머의 삶
종교가 없는 저는 죽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듯 죽음조차도 삶의 또 다른 시간으로 인식할 수는 있겠지요. 이 책의 저자는 사체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그 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렇게 밝혀두고 있기도 하지요.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 (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게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p.343)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는 저자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독자의 입장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났지만, 그 웃음 뒤로 삶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죽음에 관한 독서의 끝에서 얻은 소득이 ‘삶에 대한 욕구’라면 아이러니한 것일까요?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죽음’에 대한 오래된 우리의 관심들은 여전히 삶에 주어지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어떻게 제 블로그를 구독해주셨는지요 ㅜㅜ. 님과 같이 이렇게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전 보험에 관한 영업블로그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데요. 그래도 블로그 상이지만 이렇게 님과 만난 것도 인연이겠지요~.. 저도 최근에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에세이로 97세임에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자신의 아버지와 중년이되어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여러가지 사실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님이 추천해주신 책 한번 꼭 사서 읽겠습니다. 저 역시 종교가 없기 때문인지. 사후에 어떤 세계가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 죽음을 궁금해 하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할지라도 오늘을 이렇게 살고 있지요!!!!! 글 잘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계시던 때가 있었군요.
의술 쪽과 관계가 없는 전 마지막으로 해부를 해본게 중학교 때 였습니다. (개구리를 준비해오라는데 두꺼비를 잡아갔었죠)
몇 년 전부터 장기기증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 이라는 생각으로 장기기증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난 뒤의 세계... 종교적으로는 믿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죽음이라는 것을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죽음 앞에서 더욱 나약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0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앞의 차와 부딪히기 전까지... "아! 부딪히겠구나" 라는 직감적인 느낌과 함께, 순간적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가더군요.
정작 제 죽음을 앞에 둔다면 다시금 그런 느낌일지...
지금은 제 곁에 함께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며 하루 하루를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는게 다랍니다^^;;;
죽음은 죽음.. 나중은 나중...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 는 생각인데, 어찌보면 너무 어리석은 것일까요?
오늘도 오랫만에 방문해서 주제도 없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비가 오니 늘어지기 쉬운 하루인데... 마음 만큼은 상쾌한 오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장기기증 마음은 먹었었는데 막상 기증 서약서를 쓰려니 망설여지더군요. 사람 마음이 그런가봅니다.
밋첼 님과 비슷한 경험 저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사실 ‘갑작스레’ 일어나지만 그 순간도 보이지요. 늘 죽음은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늘 타고난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예전에 스티프STIFF라는 동명의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혹시 같은 책인가요?
어느 여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해서 쓴 책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과 깊이 있는 취재 내용에 놀랍고 부러워했어요
저는 그때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보다, 육신의 가벼움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저작들이 좀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article id #26 categorized under 오마이북! 행복한 책읽기 & written by 글감옥
우리 인류사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대단할 것이다. 그 책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은 실로 아득한 작업이 될 것이며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다만 우리 인류사의 변곡점마다 지성이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다는 점만큼은 먼저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지성이 잘 조화된 구성물이 책이라는 사실도 밝혀두고 싶다.
'왜 다시 책인가'라는 물음은 별반 소득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매우 자주 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또 부모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자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독서에 대해 열변을 토한 부모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도 '어떻게 책과 가까워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부모들조차도 그 방법에 대해 거의 아는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김명하 씨의 <우리동네 어린이도서관 101% 활용법>이라는 책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저술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영유아들을 도서관으로 이끄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재교육, 당신의 아이에게도 필요할까?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재교육은 영재성이 있는 아동, 잠재성이 있는 아동을 위한 교육이기보다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의 아동, 조기 교육을 통해 다음 단계 학습으로 넘어갈 수 있는 아동을 위한 상업적 엘리트 교육이 되기가 쉬웠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영재로 착각하는 부유한 부모와 그들에게 뒤질세라 자신의 아이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제대로 키우겠다는 중산층 부모의 불안이 포개진, 교육을 위한 교육, 가치를 잃은 교육이기 쉬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25쪽)
저자는 어느 기관에서 영재 교육에 관한 연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재 교육에 관여한 경험에 이어 그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실토한다. 아마도 그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이 이 책을 쓰게 만든 계기였을 것이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들은 정말 모두가 영재일까? 그들 모두에게 정말 그렇게 많은 사교육이 필요할까?
저자는 자신이 직접 깨달은 우리 교육에 대한 한계를 발판으로 도서관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자신이 달려간 것처럼 무작정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갈 것만을 주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순전히 노동의 결과물이라 칭찬해야 할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책이라고 여겨진다. 수많은 도서관을 직접 탐방하고 어린이도서관의 사서, 자원 활동가, 혹은 부모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친절한 소개와 활용법
이 책에서 크게 다루고 있는 내용은 두 가지라 생각한다. 어린이 도서관이란 어떤 곳인가 하는 주제가 그 중 하나이고, 그 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또 하나이다. 다시 말해, 어린이 도서관에 대한 소개와 그곳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에 대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아이들이 도서관과 친숙할 수 있을까?
"도서관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책 읽어주기라는 새로운 놀이가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8살 옥주가 관장님이 되어 도서관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내일은 6살 재웅이가 자원활동가가 되어 언니 오빠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94쪽)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이 조금 흥미롭게 다가왔던 이유는 어린이 도서관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최근 붐이 일었던 터라 그 존재는 알았지만 어린이 도서관에 방문해본 적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저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생각만 했었다(생각 한 편에서는 아이들이 오니 시끄러울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도 했다).
이 책은 어린이도서관에 친숙한 독자나 그렇지 못한 독자들 모두에게 실용적인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도서관이 실제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또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각 지역에 위치한 크고 작은 도서관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어린이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상설 문화행사도 소개하고 있다.
어린이도서관에 대해 말하지만 부모를 위한 책
이 책은 분명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유용할 활용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장점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꼭 단점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린이 도서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 이 책의 잠재적인 독자는 부모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고 부모가 다시 아이를 재교육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것은 어려웠던 탓일까.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바는 저자의 꼼꼼한 성격 탓이겠지만 160여 개에 달하는 주석(각주)들이 책을 딱딱하게 만들고 교양서인지 전문서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주석들이 신문기사나 자료집 등의 출처를 밝히기 위한 것인데 과연 그 많은 주석들이 꼭 필요했는지도 조금 의문이며, 각주의 방식이 아닌 미주(尾註)의 방식을 취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에게 책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책과 친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기 위해서는 일단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도 주효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명하 씨의 이 책 <우리동네 어린이도서관 101% 활용법>은 활용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다. 그리고 그들을 도서관에 데려가야 할 이유는 바로 그들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31개월 된 딸아이가 집에서 늘 책을 읽어 달라고 합니다. 영재교육 이런걸 해줄 형편이 안되기에.. 그런 딸을 보면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만들기 보다,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해 주되, 환경을 조금씩 채워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라는 변명도 해봅니다.
어린이도서관... 이런 곳이 더더욱 많아졌으면 하는게 가난한 아빠의 작은 바램입니다^^;;;
제 은사님 중 한 분은 아이들에게 주는 벌 중 하나가 “책을 못 읽게 하는 것”이랍니다. 저 역시 글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이 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그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책과 가깝게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입니다. 한국에도 좋은 도서관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도서관은 주로 자습을 위한 공간이었지요.
이제 책과 지식을 접하고 문화를 향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특히 어릴때 부터 책과 가까와지려면 동네 곳곳에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 많이 생기면 애들 좋고 부모 좋고 나라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공부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라 난삽하기 짝이 없습니다. 괜한 이야기 풀어 놓은 것 아닌가 후회도 됩니다.
첫 저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저는 아직 단독저서는 없지만, 한두 권의 공저서를 낼 때의 기쁨을 느껴본터라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종종 기회가 되면 연락주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성필 드림.
article id #25 categorized under 살며, 사랑하며 & written by 글감옥
아마도 나에게도 숙명이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참으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일을 해왔고, 또 운명이 허락하는 한 그 일을 하고 싶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대학원 석사과정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신인문학상에 첫 도전장을 던졌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지금 내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면 되겠지.
지금은 욕심이 커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신인문학상이니 신춘문예에 병이 깊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글을 발표할 지면이 필요했다. 혹자의 말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한 해, 또 이듬해 신춘문예의 최종심에서 미끄러지고 꼭 평론만이 가야 할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욕심도 있었지만, 논단에 나의 글을 발표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어느 대학 학술지에 투고를 했다. 우리끼리 흔히 ‘KCI급’이니 ‘등재지’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등급의 학술지였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연구 논문이 쌓여갔지만 막상 그 논문이 꾸려 나올 때면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논문’이라는 특수한 글이 대개 그렇듯, 논문집에 실리는 글은 끼리끼리만 읽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끼리끼리 조차도 제목만 훑어보는 경우가 대개일 것이다.
아마도 내 아쉬움은 연구 논문도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지난 해 활동했던 연구소에서 총서를 발간하게 되면서, 내가 쓴 논문 한 편을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첫 (공)저서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도시 공간의 이미지와 상상력>(메이데이, 2010)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서울대 김민수 교수님을 비롯하여 훌륭한 필진들이 포섭한 책에 누를 끼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기왕에 세상에 나왔으니 질타보다는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책이 세상에 나왔다니 기쁘다. 아니 설렌다. 사실 요즘 다른 일로 바쁜 탓에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했다. 기쁘기보다는 설렘이 더 큰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서점에 검색되는 이름을 보니 기쁨도 잠시, 빨리 내 이름을 건 단독 저서를 빨리 내고 싶다. 내년 이맘때에는 가능할까?
안녕하세요 글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는데,,,
물론 글을 열심히 쓰시고 계실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였군요 ^^
여러분과 같이 출판하신 책이지만 그래도 축하드려요
잘은 모르지만 그 기분 저도 조금은 압니다
저도 예전에 다른분과 같이 작업한 일러스트 책에 제이름 석자가 나오니 부끄럽기도하고 좋기도 했었거든요 ㅎㅎ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나중에 꼭 단독 저서 출판하실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사실 제가 그리고 쓴 어린이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고 있는데,,,,
어째 같은 꿈을 향해 가는것 같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되 세요 ㅎㅎ
요즘 정신이 없어서 제가 제 블로그에도 못 들어와 봅니다.
잘 지내셨지요? 어린이책 출판사는 특화가 좀 심한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위에 댓글 다신 예문당 님께도 문의해보시고(아시지 않나요?)
최근 새로 생긴 출판사도 괜찮은 곳이 있는 듯 합니다만 실상을 제가 잘 몰라서 추천해드리기가 그렇군요. 부디 베스트셀러 만드세요.
축하드립니다^^
평론이라는 분야는 제가 편견을 가진 분야입니다.
대중에게 가장 가까이 가면 되는 것을 하나하나 따지고 단점을 들추어내며, 그들(?) 기준에 맞추어 평가하는 것... 이라는 편견입니다.
물론 잘못알고 있는 것이지요^^;;;
글감옥님께는 죄송하지만, 평론 보다, 책과 블로그를 통해 만나뵙는 것이 제겐 더욱 큰 기쁨이랍니다^^
article id #13 categorized under 살며, 사랑하며 & written by 글감옥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현실 불만족'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런 불만족이 그 이유는 아닙니다. 제가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까닭은 이제 삶의 한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스물여섯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공부가 8년간 계속 되었지요. 종종 세상의 크기는 제가 읽고 있는 책의 크기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책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일 때도 많았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까닭은 어쩌면 그 동안의 삶에 대한 추억에 잠겨보는 일이기도 하겠군요.
오늘의 삶을 살며 그러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저는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두 개의 선물은 그리 값나가는 것들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 선물을 유독 아끼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저와 가까이 있는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문학공부 한답시고, 주로 머물러 있는 공간이 책상이다 보니 항상 책상 위에 시선이 먼저 가지요.
이 선물들은 바로 이 공간 속에서 항상 저와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선물들이 제게는 때론 '용기'이고, 때로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이라 제목붙이고 싶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오늘의 행복한 삶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에서일지도 모릅니다.
선물 하나 ― 스승의 마음 같은 선물
(급하게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곤)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제 책상 위에 단아하게 놓여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꽂이'입니다. 그리 오래된 물건도, 값나가는 물건도 아닙니다. 그저 깔끔하게 정리된 나뭇결에, 흐릿하게 난초 그림이 보일 뿐입니다. 아마 5년 전쯤에 받은 선물로 짐작됩니다.
학부 시절, 저는 어느 교수님의 방에서 잠깐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어딘가를 다녀오시면서 연필꽂이를 두 개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먼 길에서 사온 연필꽂이 중에 하나에 금이 가있는 겁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까닭에, 나뭇결을 타고 금이 쫙 갔던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도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지만,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연필꽂이를 제게 주시며 쓰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순간, "그냥 망가진 것 주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것이 '스승의 마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연필꽂이, 사실 이제는 별로 쓸모없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글은 노트북을 사용하여 집필하다 보니 연필․볼펜은 크게 사용할 일이 없죠. 그래서 제 연필꽂이 역시 그 자체로 불필요해진 존재이며, 불필요한 존재들이 흩어지지 않게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존재가 '스승의 마음'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금이 간 걸 가지시면서, 제자에게는 온전한 물건을 주고 싶으셨던 그 마음. 아마 그 마음이 있어 부족한 사람이 이만큼이라도 공부할 수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선물 하나―새벽기도 같은 선물
가끔 왜 그런 친구 있지 않습니까?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반가운 친구. 1년만ㅇ 있습니다. 바로 책갈피입니다. 책 읽는 습관이 유달라 저는 책갈피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메모가 필요하면 연필로 쭉 밑줄을 치면 그만이고, 다시 봐야 할 부분이면 책장을 꾹 접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갈피라는 게 책에 꽂혀 있으면 발견하기 어렵고(?), 책을 읽는 동안은 거치적거리는 게 영 불편합니다. 그런데 유독 아끼는 책갈피가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 후배분이 7~8년 전,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사다주신 책갈피입니다. 이제는 부분적으로 녹도 슬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책갈피.
이 책갈피를 사랑하는 이유도 책갈피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 선물을 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거 공부할 때 쓰고, 공부 열심히 해. 내가 잘되라고 새벽기도 때마다 같이 기도해줄게.' 사실, 저도 잠깐 교회에 나가본 일도 있지만 이렇다 할 종교는 없습니다. 새벽기도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지요. 그런 사람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해주신다는 말씀,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사실, 지금까지 기도를 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갈피를 볼 때마다 저는 그 분이 새벽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이지요.
요 며칠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되는 이유에는 사실 지난 8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까닭에 체력이 지친 까닭도 있을 테고, 앞날에 대한 불안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책상 위 두 개의 선물'처럼 고마운 분들이 항상 제 곁에 있으니 행복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효도가 그렇듯 항상 베푸려고 마음만 먹고 있다가 늦는 게 사람살이인 것 같습니다. 항상 반성해야 할 일이겠지요. 참새 님 말씀을 듣게되니 천군만군을 다 얻은 듯합니다. 사실 제가 수의학과를 (건국대는 아닙니다만) 잠깐 다닌 적이 있어 김진석 교수님은 성함만은 알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 있으면 한번 불러주세요. 짐꾼 노릇이라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rticle id #12 categorized under 오마이북! 행복한 책읽기 & written by 글감옥
우리는 한번쯤 '문학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자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결코 자본에 대해 혹은 자본주의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고자 함은 아니다. 여기 '자본'에 의해 '고용'된 문학가가 써 내려간 가장 자본주의적인 에세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란 에세이가 그것이다. 부제 '히드로 다이어리'가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명쾌한 사실은 이 책이 프랑스의 공항 터미널 히드로의 소유주가 이 시대 명망 있는 에세이스트를 고용하여 이 책을 쓰게 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자본에 의해 고용된 문학인이 창작한 '생산물'이다.
혹 문학과 자본은 별개의 것이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먼저 한국의 문인들 가운데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을 떠올려보길 권한다. 다방에 딸린 골방에서 나름의 문학 세계만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상, 그러나 식민지의 땅에서조차 찻집을 개업하며 생계를 걱정했던 이가 이상의 다른 이름 김해경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려볼 수 있다. 문학의 운명, 글쟁이의 운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문학인의 운명이란, 자본주의에서 한 걸음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믿는다. 설사 어느 글쟁이가 홀로 글을 쓰고, 홀로 글을 소비(?)한다고 하여도, 그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자본의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작가의 앞에서 '펜을 잡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자본의 은총입니다!'라고 바뀌어야만 한다.
자본주의에 가려진 감정을 살피다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이토록 자본주의적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저자를 '고용'한 터미널의 소유자에게 '매수되지 않은' 까닭, 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마땅히 읽어야만 하는 까닭은 우리의 감정조차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이 책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책이며 동시에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책이다. 이 책은 공항 터미널을 기점으로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기술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명제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감정조차도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혹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본이 감정을 '응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이 자본에 의해 고용된 문학인이 응시한 감정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접근-출발-게이트 너머-도착의 순으로 이루어진 이 에세이집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출몰한다. 때론 당황이, 때론 사랑이, 때론 기쁨이, 때론 분노가. 이 모든 것들을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것을 감정이라 말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감정에 대한 관찰의 기록이라 할만하다. 물로 그 감정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공간 터미널 히드로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인간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또 그들에게 끊임없이 닥쳐오는 감정들이다.
이 책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하여, 존재에 풍토병처럼 따라다니는 좌절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열쇠를 잃어버리거나 공황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열쇠가 절대 없어지지 않고, 여행계획이 늘 확실하게 이행되는 세계에 대한 믿음,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순진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57~59쪽)
어느 연인이 키스하는 한 장의 사진이 가운데 놓여있는 저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제일 먼저 '감정' 그 자체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감정들 특히 '분노'가 '문학은 자본에 저항한다'라고 믿는 순진한 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문학은 자본에 저항하는가. 자본주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인식되었던 문학인들, 과연 정말 그은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웠을까? 나는 이러한 물음 대신, 문학이 자본주의에서 거리가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누가 만들어낸 신화인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자본과 감정은 항상 뒤얽혀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단 한 순간도 감정은 자본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하루를 보내며 갖게 되는 변화무쌍한 감정들, 이를테면 근대적 감정들은 결코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 주위에 있는 손님들은 부자의 상투적인 틀에 전혀 들어맞지 않았"(127쪽)다는 저자의 진단이 혹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조건적으로 자본에 저항하고자 외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문학이 자본과 동떨어져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들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이 자본주의에 날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대지에 뿌리박고 하늘을 지향하나, 땅의 자양분이 없인 곧 소멸할 나무와 같다'라고 말이다.
이러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본에 대해,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근대적인 감정'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며, 어느 한 순간도 자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닐까. 설사 우리 삶의 터전이 히드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가림토 님의 말씀이 글을 수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전에 컴퓨터를 켠후 이글을 읽었습니다
방금 오후에 빌린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는길에 갑자기 이글이 생각이 나더군요,,,
미술을 한다고 하지만 ,,,
아시다시피 예술로 먹고사는건 참 힘들죠,,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비정규직이랑 뭐가 다른가 싶은게 아무래도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야지 붓을 놓지 않고 작업을 할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있다보니 한국책은 참 구하기 어렵죠
지난가을엔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파리에 혹시 한국책을 구입할만한 곳이 있나 알아봤는데 없더군요
그래로 글감옥님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 주십시오 ㅎㅎ
사진가운데 적혔다는 말.. 읽고 또 읽게 됩니다.
지나친 낙관에 따른 절망이라 ... 제 조울증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인듯해서요.
자본적인 감정들에 공감하면서도 우울하네요. '나는 자유한다; 이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팠는데 뭔가 전제가 잘못 된것 같네요.
감정에 자유한다 되어야 하는 걸까요? ㅎ 아님 내려놓음에 자유한다? ㅋㅋㅋㅋㅋ 뭔말인지 뒤죽박죽이 되어가네요
잘 읽었고 갑니다.
저에게 알렝드 보통의 모든 책은, 참 가볍게 공감되는 책이라고 느껴집니다.
'쉽게 혹할만한 매력' 은 지니고 있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깊은 충격에 쌓이는 그런 매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래 맞아!' 는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는 채워주지 못한다고나 ;
카프카가 이야기하듯이 "뒷통수를 후려치는 글" 을 읽고 싶은 봄날입니다.
너무 추워요. 감기조심!
article id #5 categorized under 살며, 사랑하며 & written by 글감옥
대학의 3월 풍경은 늘 소란스럽다. 신입생들에게는 학교의 모든 것들이 낯설겠지만 재학생들의 경우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나는 같은 캠퍼스에서 벌써 아홉 번째 맞는 3월이지만 이 무렵의 풍경은 항상 흥미롭고 또 항상 낯설다. 그 소란들은 대개 ‘강의’와 관련된다.
우선 3월에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수강신청과 관련이 있다. 듣고 싶었던 강의에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끊임없이 수강신청시스템에 드나들며 빈자리가 나기만을 고대한다. 두 번째 3월의 풍경 중 하나는 ‘여전히(!) 낯선 강의실’이다. 신입생들에게는 캠퍼스 곳곳의 모든 것들이 낯설겠지만, 재학생들에게는 결코 예외는 아니다. 몇 시간에 걸친 등산 끝에 나오는 ‘이 산이 아닌가봐’라는 탄식은 그나마 나은 것이리라. 강의 시작 시간은 임박했는데 건물을 잘못 찾아온 학생들은 뛰고 또 뛰어야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강의교재이다. 이맘때면 되면 꼭 서점은 늘 붐비는 것 같고, 학생들이 꾸려놓은 게시판에서도 중고 서적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모든 게 지갑사정과 관련되겠지만, 한 학기 강의를 들으면 펴볼 일 없는(?) 책일 텐데 값이 만만찮다. ‘왜 하필 이렇게 비싼 책을 강의교재로 선택했담!’이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제부터 정보 검색전이다. 먼저 인터넷에 접속하여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다. 다음 수업 전까지는 받아볼 수 있는가, 배송은 무료인가 … 등등 따져볼 것도 많다. 그러다보면 ‘잘못된 선택’도 나오기 마련이다.
너무도 섹시한 인류학 서적?
어느 수업을 수강할 때였다. 강의계획서를 살펴보니 교재가 무려 7권이다. 대충 따져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그 뒤를 따른다. 이제 ‘실전’ 정보 검색전을 시작할 때이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이다 ‘아싸’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인간동물원>이란 책을 주문할 때였다. 어느 서점 사이트에서 이 책을 다른 사이트에 비해 무려 3천원이나 싸게 팔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품절되거나, 가격이 변동될 수도 있으니. 일단 주문 클릭!
며칠 후, 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아, 책이나 먼저 읽어둘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평소에 안 하던 예습을 왜 생각했을까 모르겠지만 일단 책을 펼쳤다. 우선 목차를 봐둬야 하지 않겠는가? ‘음~~’ 각 장의 소제목들이 아주 그럴 듯하다. "나르시시즘, 욕구불만, 우월감, 사디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최면암시, 게젤샤프트, 게마인샤프트, 원시공산제, 의회제 민주주의, 매스 커뮤니케이션, 근대도시 …" 등등의 순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분 후였다. 두 번째 한 페이지를 읽고 있을 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밝고 명랑한 얼굴. 조금 못생기긴 했지만, 내 취향에 꼭 맞는 얼굴이었다. 눈 아래에는 주근깨까지 적당히 깔려 있었다. 서몬 핑크빛의 도톰한 입술은 내 가슴을 마구 고동치게 했다. 촌스런 가정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멋진 육체를 감출 수는 없었다. ○○은 그다지 크게 부풀어 오르진 않았지만 …”
― 츠츠이 야스다카, 양억관 옮김, <인간 동물원>, 북스토리, 2004, p.10.
‘○○○ 선생님이 이 책을 왜 교재로 선택했지?’라는 생각이었다. 도무지 평소에 알던 교수님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다. 한 페이지 더, 한 페이지 더 …,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갔다. ‘분명 도시와 관련된 인류학 서적이라고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 이것도 인류학이라면 인류학이겠지만 아무튼 뭔가 이상했다. 성(性)과 관련된 발언은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분이 이런 책을 왜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갈만큼 책의 내용이 섹시한 것이었다. 몇 페이지 더 넘기니,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아, 이거 정말 뭔가 이상하다. 아니면 사람이 변했던가’라는 생각이 든 건 채 몇 페이지를 더 넘기기도 전이었다.
앗불싸! 강의계획서를 다시 살펴보니, 교수님이 선택한 교재가 <인간 동물원>인 것은 맞다. 문제는 교수님이 선택한 교재가 전혀 다른 저자가 쓴 책이라는 데 있었다.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라는 영국의 동물학 박사가 쓴 <인간 동물원>이 강의계획서에 올라와있는 교재였는데, 츠츠이 야스다카(筒井康隆)라는 일본의 소설가가 쓴 SF 단편집 <인간 동물원>을 잘못 구입한 것이었다.
부화뇌동, 그러나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다
흔히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고 하던가(부화뇌동의 사전상 의미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 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한다’이다). 가격 비교에만 몰두하다가 제목만 같은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구입한 것이었다. 소설 <인간 동물원>을 구입할 때 가격이 쌌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두 책의 정가가 본래 2500원이 차이였고, 나는 크게 할인도 받지 못한 책을 구입하면서도 혼자 기뻐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데즈먼드 모리스가 쓴 책을 다시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착한 진짜 교재를 폈을 때는 이런 내용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
“현대 생활의 압박이 날로 커짐에 따라,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도시 거주자들은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세계를 흔히 콘크리트 정글로 표현한다. 이것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방법이지만,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기도 하다. 진짜 밀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이 사실을 확인해줄 것이다.”
― 데즈먼드 모리스, 김석희 옮김, <인간 동물원>, 물병자리, 2003, p.18.
현대 생활, 인구밀도, 도시공동체… 이 얼마나 따분한 단어들의 나열인가. 게다가 ‘연구’라는 말이 주는 저 은근한 압박감이란! 결국 몇 푼 아껴보겠다고 ‘부화뇌동’한 탓에 나는 책 한 권을 더 산 꼴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츠츠이 야스다카의 책을 반품하지 않았다. 딱히 SF소설에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책을 반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책을 반품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종종 즐거움을 준다. 성(性)과 관련된 발언을 끔찍이도 싫어하시는 교수님이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이 즐비한 소설을 펴놓고 수업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수업은 어떠했는지 궁금하신가? 위에 인용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내용과 비슷했다면 대답이 될 듯하다.
article id #4 categorized under 오마이북! 행복한 책읽기 & written by 글감옥
아침에 눈을 떴는데, 당신의 모든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중요한 점심 약속을 앞둔 상황에 당신의 휴대폰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어느 날 밤 이 세상에서 모든 인터넷이 사라진다면?
나는 지금, 디지털 예찬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디지털시대는 십 수 년 전에 ‘혁명’처럼, 그러나 ‘조용히’ 우리들 곁을 찾아왔다. 1997년 초,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필자에게 여자 친구가 물었다. “이메일 주소가 뭐야?”당시로서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그 친구에게 색다른 취미가 생겼다고 생각했지만(군대에 있는 나를 대신해줬다고 생각해하며 속으로는 인터넷에 고마워했다), 이제 우리는 이메일이 없다면 어떤 업무도 처리할 수 없다. 바로 지금, 여러분도 이 글을 인터넷에 접속하여 읽고 있지 않은가. D신문을 수십 년간 애독하던 필자의 아버지도 더 이상 종이신문을 뒤적이지 않는다.
너무나 뻔한,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미치 조웰의 <미래를 지배하는 식스 픽셀>은 이런 디지털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안내서이다. 혹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구태의연하다고 느끼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상의 수많은 블로그에는 얼마나 많은 포스트가 올라오고 있는지를.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의 블로거들을 향해 넓은 디지털의 바다에서 어떻게 ‘최고의 블로거’가 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세계 최고 마케터들의 온라인 마케팅”이라는 책의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책은 ‘마케팅’에 대해 말하지만, 특정 제품에 관한 마케팅이 아니라 ‘블로그를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이른바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마케팅은 하룻밤 새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기존의 광고 체계에서는 강렬한 광고를 내보낸 후 판매가 급신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악순환의 고리가 존재한다. 광고를 많이 할수록 관심도 높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는 빠르게 줄어들고 판매도 급감한다.” (p.50)
이 경고는 어떤 회사의 마케팅 관계자에게 하는 경고가 아니다. 바로 블로거, 평범한 블로거들에게 하는 충고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원칙들을 요령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 요령은 바로 저자 자신이 마케팅 전문가 아닌 평범한(?) 블로거로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원칙들, 그리고 잊지 않은 원칙들을 경험담을 토대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흔히 지나칠 수 있는 ‘댓글’에 대해서도 그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는 댓글을 써준 사람은 절대 잊지 않는다”(p.59)라고. 이처럼 <미래를 지배하는 식스 픽셀>의 저자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것들을 순리적이면서 경험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블로그라는 현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자,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인 미치 조웰이 1차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세속적’인 눈으로 보자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가 ‘파워 블로거’라고 이야기하는 영향력 있는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토록 구체적이고 분명한 목표에 대해 말하는 데 있어 그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파는 데 꼭 유명 대학출신의 MBA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MBA들이 제시하는 마케팅 전략이 종종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Abraham 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설은 매우 유명한 이론이다.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한 단계는 자아실현으로, 온라인 채널이 가장 집중하는 분야이다.”(p.33)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왜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물론 그는 성공한 마케팅 전문가이다. 저자 소개의 일부분에서 나타나듯 그는 “블로그 마케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필자의 신뢰 또한 이런 정보들에서 연유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이 설득력이 있는 까닭은 바로 인간의 심리를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이다.
잠깐 위에 인용한 부분을 함께 읽어보자. 지금 그는 디지털 마케팅에 말하면서 ‘인간 욕구 5단계설’이란 것을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심리학 서적을 몇 권 읽었다거나 특정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이 디지털의 세계에 ‘훔뻑’ 빠져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어보기 위해 인간학 혹은 심리학 서적을 상당히 읽어낸 듯하며, 그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즉,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나열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실용적이면서도 상당히 이론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인맥 구축을 위한 로드맵, 혹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학
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묻고 싶다. 왜 블로그를 운영하는가?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이유 중에는 ‘인맥 구축’ 역시 포함될 것이다. 인맥 구축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오늘날 많이 회사들이 홈페이지 외에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것인가 하는 고심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마케팅이란 말, 고객 유치란 말이 평범한 네티즌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래를 지배하는 식스 픽셀>에서 최종 목표로 삼는 지점은 아마도 이 지점일 것이다. 우리가 변화무쌍하게 발전해나가는 디지털의 세상에서 어떻게 인맥을 구축하고, 어떤 인간으로 적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러니까 저자는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 그리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서도 이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에 ‘디지털 시대의 인간학’이라는 말을 붙인다 해도 저자에게 과찬은 아닐 것이다.
직업조차 프로그래머 이다보니... 그 모든것이 불가능 하다면.. 당장 저 하나를 바라보는 가족들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가끔씩 인터넷이 안되는 환경에만 가더라도 답답하고, 휴대폰(물론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만)을 두고 출근하는 경우에도 조바심이 나는데,
이 모든것이 없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모든 것이 없다면... 아예 마음이 편해지게 되려나요^^
글감옥님과 통한걸까요!
저도 오늘 위 주제와 비슷한 글을 썼습니다.
트랙백 달고 싶은데 네이버에선 트랙백 어떻게 전송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ㅠㅠ 찾아보겠습니다.
마케팅 잡지에서 보았을 때,
블로그도 하나의 마케팅 활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글감옥님이 이런 종류의 글도 쓰실 줄 몰랐습니다!
잘 봤습니다. 저 책도 한번 봐야겠네요 :)
블로그,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즉각적인 피드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임에 열광하는 것이, 즉각적인 피드백이라는데요, 블로그도 비슷한 것 같아요.
조회수, 추천, 랭킹, 구독자수. 등을 통해,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을 불끈불끈 키워주죠. ^^
저같은 경우, 가장 큰 목적은 재미입니다.
일단 재미있어서 하지만, 그 효과가... 그 이상으로 번지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여러 이웃님들의 좋은 이야기도 듣게 되고, 항상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거기에 마케팅 효과까지 더해진다니, 최고 아닌가 싶고요. ^^
가끔 문명을 주도하는 게 아닌 문명에 의해 구속되는 느낌이 있지요.
뭐라고 하든데?......아이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스트레스?
소극적으로 회피하는 어른들도 있고 심지어 일부 신세대 아이티 문화를 백안시, 사갈시 하는 어른들도 있지요.
정치에서 문화까지 사회 여기저기서 세대간 갈등과 지체현상이 상당합니다.
그 추세를 멈출수야 없겠지만 일개 평범하고 소박한 블로그 입장에선 온라인 세상이 또 하나의 감옥 혹은 오프라인의 도피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염려스럽습니다. 현실적 힘은 여전히, 앞으로도 상당기간 오프라인에 있을 수밖에 없죠. 개미들이 갑론을박 하더라도 권력자가 전선을 잘라버리면 속수무책입니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개연성 있는 일이지요. 유시민씨도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죠. 염력만으론 비행기를 띄울 수 없다.
또하나 염려하는 건 상업성입니다. 스팸메일, 스팸 블로거뿐만이 아니라 일반 블로거들도 자유롭지 못하죠.
김용철 변호사를 포스팅하면서 삼성광고가 실리는 현상이 비일비재할 겁니다.
온과 오프, 안과 밖, 성찰과 교감, 재미와 유익함 등이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지요.^^